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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장기호황

by 하얀스케치북선물 2022. 10. 7.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정부의 물가 통제

처음에 미국인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경제가 걱정이었다. 전시에 물자를 많이 썼는데 불황이 다시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미국 경제는 상승 기류를 이어갔다. 그 이유는 전시에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렇게 주라고 했다. 이 임금이 모두 제한적으로 공급되는 소비재를 쫓아간다면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었다. 미국 정부는 전쟁 기간 동안 물가를 엄격히 통제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돈을 저축했고 1945년 무렵 그 액수가 무려 2,300억 달러에 달했다. 1939년 연방의 전체 예산이 100억 달러가 안 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실로 엄청난 액수다.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은 이 돈을 쓰기 시작했다.

 

전쟁 후 미국의 경제 성장

전쟁 기간 동안 저축한 돈이 밀물처럼 다 빠져나갔지만 미국 경제는 여전히 성장을 지속했다. 사람들의 구매력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군인 원호법이 제대군인들에게 대학 학비를 지원했다. 제대군인 원호법은 제대군인이 사업을 시작하고 집을 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사람들은 집이 필요했다. 대공황기 동안 수많은 젊은이들이 가정을 꾸릴 형편이 못되었다. 이제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았고 베이비붐 시대가 열렸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사비 지출은 다시 늘었다. 농업 정책을 통해 농가 수입이 높아졌다.

 

기업은 여전히 가능한 한 적은 임금을 주려 했지만 노동조합과 최저임금제로 인해 한도를 지켜야 했다. 기업가들은 우는 소리를 했지만 그들도 호시절이었다. 노동자가 많이 벌면 소비자의 주머니가 그만큼 두둑해지니까 말이다. 노동조합은 비노조 노동자들을 도와주었다. 사회보장과 실업급여를 통해 은퇴자와 실업자들도 쓸 돈을 갖게 되었다. 사회복지는 남편이 없는 가난한 어머니들에게 돈을 주었다.

뉴딜정책의 규제안이 새로운 부를 월가가 독차지하지 못하게 막아섰다. 이 모든 정책에 필요한 돈은 누진세에서 나왔다. 누진세는 많이 벌면 그만큼 세금으로 가져가는 제도이다. 자녀가 없는 미혼 남성 기준(1946년) 그 당시 의사의 평균 수입은 5,000달러쯤이었고 10,000달러 이상은 버는 소득자는 전체 인구 중 2%가 안 되었다.

 

뉴딜정책이 당시까지 유지된 것은 시간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 정책들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충분한 합의를 거쳐 실행되었다. 물론 머지않아 현명하지 못했거나 불가능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후보가 승리했다. 그는 혼합경제에 초대형 공공사업을 추가했는데 바로 주간 고속도로 체계였다. 사람들은 정부가 경기순환을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국내총생산 GDP와 국민총생산 GNP

경기순환의 관리는 그것을 추적한다는 의미이다. 정부는 수많은 통계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 방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자료를 백 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통계 중 가장 중요한 국내총생산을 말하는 GDP는 한 나라 안에서 사고 판 재화와 용역의 총량을 의미한다. 경제의 총생산량을 뜻하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 정부는 국민총생산을 말하는 GNP를 강조했다. GNP는 GDP에 미국인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더하고 해외로 보낸 돈을 뺀 액수이다. GDP는 이중계산을 막기 위해 최종 재화와 용역만 계산한다. 당신이 무언가를 구입하면 GDP는 증가한다. 무엇을 사는지는 상관없다. 불법만 아니라면 말이다.

 

국내총생산 GDP 계산 방법

GDP는 화폐 거래만 계산된다. 나무를 자르지 않는 한 숲은 GDP로 계산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고, 집안 청소를 직접 하고, 아이들을 직접 돌보면, 이것은 GDP로 등록되지 않는다. 만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집안 청소를 사람을 불러 시키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면, 이것은 GDP로 등록된다. 이렇듯 동일한 양의 일이라도 화폐경제로 들어가야만 GDP가 치솟는다. GDP는 가격 변동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물건을 가져가고 있는지, 아니면 똑같은 물건에 돈을 더 많이 내는 건 아닌지 알게 된다. GDP는 어떤 물건으로부터 얻는 수익이 아니라 그 물건의 값이 계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값싼 수돗물은 GDP에 계산되지 않는다. 하지만 병에 든 비싼 생수를 사 먹으면 GDP는 올라간다.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지를 결코 알려주지는 못한다.

 

1950년대에는 대공황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경제정책의 1순위는 GDP의 꾸준한 상승이었다. 사람들은 GDP를 상승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케인스의 “더 많이 써라!” 가 그것이다.

실업자 고용은 누우서 떡 먹기였지만, 완전 고용은 불가능했다. 더 이상 지출을 계속 늘려서 경제를 확장시킬 수 없는 시점이 왔다. 경제는 커질 만큼 커져 있었다. 대신 새로운 지출이 다른 지출을 몰아냈고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지 않으면서 완전고용 가까이로 경제를 유지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제법 일을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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