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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미국을 가로지른 철도와 빅오일 그리고 거대기업

by 하얀스케치북선물 2022. 10. 7.

미국을 가로지른 철도

기업이 큰 이유는 큰 사업을 맡았기 때문이다. 대륙횡단철도처럼 필요성은 명백하지만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사업을 맡을 곳이 필요했다. 미국인들은 서부 지역의 땅 대부분을 소유한 연방정부의 권력을 경계했다. 차라리 민간기업에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해 보였다.

대륙횡단철도는 1869년에 완공되었지만 누구도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하 길이 없었다. 연방정부는 철도회사 즉 철도를 운영하는 기업가들에게 텍사스를 덮고도 남을 땅을 넘겨주었다. 주 정부는 그보다 더 많이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대가로 공공심을 기대하려 하면 터무니없는 기차요금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철도는 자연독점이었기 때문이다.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철로 하나가 있다면 또 다른 철도는 필요 없다. 그래서 최초의 철로가 유일한 철로가 된다.

 

규모의 경제

철도는 경제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철도 덕분에 미국은 단일한 거대 시장이 되었고 기업은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엄청난 이윤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규모의 경제는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어 단위당 제작비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단위당 제작비가 낮아지는 대신에 선행 투자 비용이 올라가는 트레이드오프가 발생된다. 공장이 크면 톤당 철 제작비가 줄어들지만 그러려면 먼저 큰 공장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맨 처음 선행투자 비용을 낸 사람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그 후 잘만 꾸리면 규모를 점점 더 키울 수 있다. 마침내 어마어마한 선행투자 비용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의 접근이 어려워진다.

 

19세기 말 규모의 경제가 미국을 휩쓸었다. 거대 기업들은 창립자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리랜드 스탠퍼드의 철도 사업, 시카고에서는 필립 아모르의 도축 사업, 사이러스 맥코믹의 농기계 제조사업, 리처드 시어스의 통신판매사업, 뉴욕에서는 코넬리어스 밴더빌트의 철도 사업, 피츠버그에서는 앤드루 카네기의 철강사업, 앤드루 멜런의 은행 사업,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워싱턴 듀크의 담배 사업 등이 있었다. 얼마나 커야 큰 걸까? 그 한계는 없었다. 기업 하나가 산업 전체를 장악한 경우도 있었다.

 

빅 오일

원유를 정제하여 램프에 쓰는 저렴한 등유로 바꿀 수 있게 되면서 석유산업은 시작되었다. 1859년 펜실베이나에서 최초의 유정이 굴착되었다. 곧 소규모 굴착 회사와 정유회사가 자유 시장에서 경쟁을 벌였다. 1873년 최악의 공황이 찾아왔다. 전 세계의 은행들이 한꺼번에 파산을 맞았다. 큰 기업은 작은 기업보다 경기 폭락을 잘 견딘다. 1880년경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몇몇 경쟁사를 사들이고 다른 업체와 동맹하여 나머지 회사들을 망하게 했다. 독과점을 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독과점은 판매자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경쟁하는 구매자가 없을 때에는 수요독점이라고 한다.

 

거대기업

스탠더드 오일은 독점인 동시에 수요독점이었다. 스탠더드 오일은 완전한 독과점 기업은 아니었다. 사방에 늘 경쟁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거대 기업은 독점하지 않더라도 통제할 방법이 있었다. 거대 기업은 몽땅 사들일 수 있었다. 공급업체, 소매업체, 운송업체, 등등. 자신들이 사들일 수 없는 것들은 협박했다. 스탠더드 오일은 철도도 협박했다. 이들은 경쟁사조차 통제할 수 있었다.

 

거대 기업의 이점은 애덤 스미스의 시대에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불리한 점이 훨씬 많았다. 18세기에 너무 큰 사업체는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넘어졌을 것이다. 1세기 만에 기술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 이후 거대 기업의 이점이 불리함을 누르면서 기업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1890년이 되면 확장은 더 쉬워졌다. 뉴저지 주는 기업이 다른 기업이 주식을 소유할 수 있게 허용했다. 다른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손쉽게 인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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