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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제3세계와 스태그플래이션

by 하얀스케치북선물 2022. 10. 7.

제3세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식민지 대부분이 독립하면서 세계는 한층 복잡해졌다. 미국은 파키스탄과 캄보디아와 볼타 강 상류 등 신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세계 대부분은 여전히 농업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무엇보다 토지개혁이 절실했다. 이러한 상황을 간파한 미국인들은 정부에서 밀려났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모든 이의 빈축을 살 만큼 단세포적이었다. 민주주의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권력을 잡으면 어떡할지 걱정했다.

 

이렇듯 미국의 관대함은 때때로 독재자들에게도 돌아갔다. 이것은 대기업의 필요와도 딱 맞아떨어졌다. 또한 반공주의는 오랜 이야기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정부가 대기업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게 했다. 예컨대 앵글로-페르시안 석유회사(지금은 BP)는 수십 년간 이란을 속이고 석유를 빼돌렸다. 1951년이란 총리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이란 석유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미국의 석유 회사들은 불안해졌다. 1953년 모사데크는 CIA 공작에 의해 축출되었고 모하마드 레자 샤인  팔레비 왕조가 들어섰다.

 

일단 독재자가 권력을 장악하면 그를 제거하기가 매우 어렵다. 미국은 남베트남 지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독재자들이 활개 치게 만들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집권하던 무렵 남베트남 정권은 베트콩이라 불리는 반군들 때문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반군 대다수는 토지개혁을 요구한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위대한 사회만 신경을 썼고 세계의 다른 곳에 사는 농부들은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군사지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경제의 다른 부문들을 몰아냈다. 1966년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은 3%를 기록했다. 그즈음 가장 높은 수치였다.

 

린든 존슨은 경기를 냉각시키기 위해 세금을 올렸지만 인상률이 너무 적은 데다가 때가 너무 늦었다. 어쨌든 영구적이고 강한 군대가 엄청난 돈을 쓴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위대한 사회는 전쟁에 끝없는 돈이 들어감으로써 완전히 실패했다. 사실 예전의 경제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인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

1960년대 말까지 경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고용률이 높으면 인플레이션율도 높다. 소득이 올라가니까 경제가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이 사려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사실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의 상관관계는 매우 명약관화하다. 그 후로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 곧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이 함께 오르는 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불경기의 잠재성이 분명하고 일을 할 수 있는데 못하는 실업자들이 있다면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될 수 없다. 스태그플레이션은 학계만이 아니라 정책의 문제이기도 했다.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줄이려면 경제의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고용률이 악화되어 실업률이 올라간다. 그래서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경제에 바람을 집어넣으면 인플레이션이 악화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스태그플레이션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주류 경제학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었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려면, 공급이 너무 적거나 수요가 너무 많아야 한다. 그런데 두 가지 다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있다.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예사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물가가 상승하면 모든 사람이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기업은 가격을 인상하고 노동자들은 급여 인상을 요구한다. 그러면 또 물가가 상승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수학으로 풀어내기는 어렵다. 1940년대부터 경제학자들은 특히 미시경제학에서 수학 모형의 틀을 만들었다. 각 모형은 바로 이전 모형과 엄밀히 들어맞았고 이것은 그 바로 이전 모형과 들어맞았다. 이렇게 해서 미시적 기초까지 내려갔다. 미시적 기초는 이상적인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현실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그것을 지지하고 있는 기반이 불안하다.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그것을 망각하곤 한다. 수학적 분석은 경제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다. 그림과 말로는 결코 경제 이론을 설명할 수 없다고 미국의 경제학자인 로버트 루커스가 말했다.

 

케인스는 결코 엄격한 틀에 이론을 꿰맞추지 않았다. 그래서 케인스학파의 정책들이 삐걱대기 시작했을 때 1960년대 말까지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순수 이론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이디어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기업들이 기대에 기반해 가격을 올릴 수 있었다면 가격 설정의 권력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런 가능성을 배제했지만 다른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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