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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자신들의 이익을 합리화 했던 부자와 권력자들의 주장

by 하얀스케치북선물 2022. 10. 3.

부자들의 반란

과거에 부자와 권력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이익을 모두의 이익처럼 보이게 했는가? 독점은 옳다. 노예 소유는 옳다. 모두를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면 사회주의 낙원이 건설된다. 공장에 대한 규제는 나쁘다. 가난뱅이들은 죽게 놔두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이다.라고 부자와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합리화했다. 이것을 애덤 스미스는 멋지게 표현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모든 시대에 인류의 지배층이 따르는 저열한 격언이다. 지금은 이러한 생각을 무시하는 것이 제법 쉽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생각들이 먹혀들었다. 인류의 상식을 깨뜨린 것이다.

 

비슷한 생각들이 오늘날 우리의 상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오염통제는 나쁘다. 부자들에 대한 높은 세금은 나쁘다. 금융시장의 규제 철폐는 옳다. 사회보장 정책은 나쁘다. 이러한 생각들이 1970년대에 정말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앤드루 멜런의 종손인 리처드 멜런 스케이프는 자신들을 옹호할 기관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보수주의 운동의 핵심이 되었다. 그래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어떤 사상은 보조금을 받았다.

 

보수주의 경제학과 주류 경제학

과거 노예제도가 잘못이라는 말은 오늘날 전혀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부와 권력의 극단적 불평등에 대한 정당화는 과거 노예소유의 정당화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은 논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보조금을 받은 사상들이란 무엇일까? 그중에서 가장 큰 사상은 보수주의 경제학이다. 1970년대에 보수주의 경제학은 학계에서 상당한 존경을 받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처음부터 완벽한 자유시장이 있다고 가정한 수학에 폭 싸여 있었다. 거기에서 밀턴 프리드만으로 가는 데 눈곱만큼 도약이 있었고, 프리드만은 감독을 받지 않은 시장이 언제나 최고라고 하였다. 따라서 1970년대 보수주의 경제학은 주류 경제학과 그리 멀지 않았다. 결국 주류 경제학은 현실 세계를 다시 끌어들였다. 감독받지 않은 시장은 엉망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2000년대 초까지 주류 경제학은 다음을 집어넣어 모형을 확장했다. 역사와 제도의 중요성, 사상과 지식의 중요성, 독점적 경쟁과 정보의 불균형(사람들 모두 똑같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음), 리카도 시대 이후 획기적인 심리학의 발전(인간은 단순히 이성적인 전자계산기가 아니다), 사회적 충격, 이를테면 어떻게 우리가 사적 이익보다 때로는 공정성을 선택하는지, 케인스, 현실 세계의 데이터 축적, 통제된 실험을 통해 이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을 살펴보는 것, 기타 등등.

 

부자들의 합리화 방법

예컨대 1970년대 이후 부자들은 너무 가난하고 가난한 자들은 너무 부유하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2002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가난한 사람들을 운 좋은 새끼오리라고 칭했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말한다. 가난한 자들은 정부로부터 너무 많은 보조금을 받는다. 가난한 자들은 삶이 더 힘들어야 나은 인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사실 많이 가졌어도 늘 피해자처럼 군다. 가난한 자들은 일 안 해도 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자들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국가는 게으른 사람들을 지원할 여유가 없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두 계급이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심리를 어찌 그리 잘 아는지 궁금할 것이다. 하나의 가능성은 부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투영했다는 것이다. 부자인 우리들은 정부로부터 너무 많은 보조금을 받는다. 부자인 우리는 삶이 더 힘들어져야 나은 인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부자인 우리들은 사실 많이 가졌어도 늘 피해자처럼 군다. 부자인 우리들은 일 안 해도 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인 우리들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국가는 게으른 우리를 지원할 여유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어쨌든 사회보장이나 누진세 제도처럼 시행착오를 거쳐 채택된 정책을 없애자는 일부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은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 오히려 급진적이다. 그래서인지 1970년대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보수혁명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뉴딜정책을 지워버리고 시계를 1920년대로 되돌리려 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세금정책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작은 정부와 균형 예산과 규제 감소와 감세를 약속했다. 사람들이 감세를 원하는 것은 옳았다. 1980년 중산층 가정은 소득의 25%를 연방세로 납부했다. 15년 전에는 그 절반 수준이었다. 레이건은 약속을 지켰다. 최고 세율은 1981년에 70%에서 50%로 떨어졌고 1986년에 28.6%로 떨어졌다. 1986년 법안은 몇 가지 세금 구멍을 막았지만 또 다른 구멍들을 열어놓았다. 대기업들은 달콤한 감세와 멜런 스타일의 환급을 받아냈다. 1981년 제너럴 일렉트릭은 1억 5,000만 달러나 환급받았다. 과표구간 상향 조정은 마침내 멈추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단 1%의 소득세 감면을 받았다. 다른 말로 하면 1970년대의 세금 증가는 고착되었다.

 

낮은 세율은 정부의 재정수입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을 때 레이건은 아니라고 답했다. 오히려 이러한 정책을 통해 경제가 더 강해질 수 있고 예산의 균형을 찾을 것이며 1984년까지 이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하였다. 레이건은 사회보장 일부를 삭감했지만 군사비 지출을 늘려 총지출 규모가 오히려 커졌다. 다른 말로 하면 레이건은 더 큰 정부를 만들었다. 낮은 세율과 지출 증가는 어마어마한 재정적자를 뜻한다. 아무리 레이건의 이해력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그의 경제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즉흥적이었다. 세금 감면의 효과는 거의 부자들에게 집중되었다.

 

레이건 행정부의 지출 대부분은 공중으로 사라졌다. 레이건의 행정부 관리 중 130명이 조사받거나 기소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았다. 게다가 1982년과 1983년 레이건은 세금을 올렸다. 부자를 뺀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터 시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럼에도 레이건의 예산은 결코 균형 가까이도 가지 못했다. 레이건의 적자 재정지출이 경기 호황으로 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비밀에 싸인 연방준비위원회 회의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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