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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비대한 국가와 숫자 경영

by 하얀스케치북선물 2022. 10. 3.

비대한 국가의 규제안 위의 규제안

세금은 매우 높았다. 정부를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정부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코 계획을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 당국은 이 지구상에서 내가 여태까지 본 것들 중 가장 영원한 생명체에 근접한다. 그리고 규제안 위에 규제안이 쌓였다. 1969년에는 별별 규제가 다 있었다. 완숙 송이토마토는 크기가 6.3cm가 되어야 한다. 녹색 토마토는 더 작아도 괜찮다 라는 규제였다. 미국의 토마토 농부들이 이 규제를 싫어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농부들이 요구한 것이었다. 사실은 이렇다. 미국 농부들은 녹색 토마토를 주로 키웠고 멕시코 농부들은 송이토마토를 주로 키웠다. 이 법이 멕시코 토마토를 못 들어오게 막으면서 미국 농부들이 30% 더 청구하게 했다. 이러한 규제 포획은 정부가 커지면서 문제가 늘어났다. 이해관계 당사자에 의해 좌지우지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는 대기업은 늘 감시해야 한다는 큰 정부의 명분도 잘못된 것처럼 보였다.

 

숫자경영을 위한 경영 전문가의 필요

기업의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기업이 성장하고 다변화되면서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고 경영진도 세부적인 내용을 모두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업은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거대해진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문가인 경영 전문가가 필요했다. 자동차나 양말 만드는 방법보다 돈과 숫자를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경영전문가들은 많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객관적이고 수량적인 사고를 들여왔다. 그러나 얼마나 중요한지와 상관없이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 것들은 모두 무시했다. 케네디 존슨 대통령 시절의 국방장관이자 신경영의 선구자였던 로버트 맥나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본 모든 수치에 따르면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서 이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디트로이트의 공장에서 자동차 조립이 끝나면 감독관은 문제를 점검하곤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자꾸 늘어났다. 반면 경영자들은 자신들의 급여가 비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US 철강 공장의 노동자는 6,000명이었는데 경영진이 무려 7,000명이었다.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경영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영의 발전과 오류

경영이 발전할수록 노동자들은 점점 혜택을 받지 못했다. 경영자들은 심지어 기술의 결정에도 손을 댔다. 1970년대에 GM의 자동차 전조등을 설계하는 데 회의가 15번 열렸고 그중 CEO가 5회 참석했다. 1970년에서 1978년까지 포드사의 회장이던 리 아이아코카는 소형 자동차의 사양을 자신이 결정하고 승인했다. 자동차가 설계되기도 전에 가격이 결정되기도 했다. 아이아코카는 또한 생산 시간까지 결정했는데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이렇게 만든 포드의 핀토 모델은 쉽게 폭발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 문제는 차 한 대당 11달러면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회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잘못된 경영으로 인해 1970년대에 펜 센트럴 철도와 US철강이 도산했다. 펜 센트럴 철도의 도산에 정부는 여객열차를 국영화할 수밖에 없었다. 암트랙 국영철도는 펜 센트럴보다 잘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업들은 매번 변명만 늘어놓았다. 세금 때문이다. 노동조합 때문이다. 환경법이 문제다. 쓸데없는 규제들 때문이다. 해외 경쟁이 문제다.라는 변명들 말이다. 물론 이 변명들 중에 사실도 있었다. 해외 경쟁이 그러했다.

 

세계시장과 일본 제품

미국의 대기업은 수십 년간 고객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 사이 국제무역은 더욱 효율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 기업들은 세계 시장과 경쟁을 벌여야 했다. 가장 눈에 띈 현상은 미국인들이 외제차 특히 일본차를 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을 제한했다. 그리고 협력을 장려하고 보조금과 혜택을 주고 사실상 국민들에게 저축을 강요하여 기업이 항상 투자받을 수 있게 했다. 미국인들은 일본 정부의 정책이 불공정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일본 기업의 제품이 미국 기업의 제품보다 더 나았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에서는 소수의 경영자만 존재했고 종업원들과의 거리감이 덜했다. 2000년대에도 일본의 자동차 기업들은 미국 기업보다 직원으로부터 100배나 많은 제안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달러로 차를 샀기 때문에 일본은 달러가 넘쳐났다. 이것으로 미국 상품을 구입하기도 했지만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판매한 만큼 많이 사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무역적자에 시달렸다. 일본은 달러로 미국의 주식과 채권 그리고 국채를 사들였다. 이 거래는 한때 제한되었지만 거래제한 곧 자본 통제는 1970년대에 완화되었다. 그래서 돈의 흐름은 균형을 이루었지만 상품의 흐름은 그렇지 않았다.

그 이후 미국은 자본을 싸게 팔아 치우고 더 많은 상품을 사들였다. 자본을 소유한 미국인들에게는 호시절이었다. 미국 소비자들에게도 호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소비자 대부분이 노동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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