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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누구에게도 맞지 않은 세계화

by 하얀스케치북선물 2022. 10. 10.

국제통화기금 (IMF)

1980년대 폴 볼커 때문에 달러가 부족해지자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돈을 쉽게 벌던 1970년대의 채무를 상환하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국제통화기금이 등장했다. 이 기구를 IMF라고 한다. 1980년대까지 IMF는 신자유주의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신자유주의 채택과 함께 구조조정이 하달되었다.

구조조정의 내용으로는 공공서비스를 민간에 넘길 것, 부자들과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균형예산이 유지되도록 국방비를 제외한 공공지출 삭감, 모든 것에 대한 규제 철폐, 시장방임주의 등이 있었다. 구조조정을 거부하기 어려웠다. IMF가 불량국가로 지정하면 세계은행과 민간 차입자와 기업과 미국 재무부와 구호단체도 아예 접근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구조조정을 싫어했고 IMF도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조항으로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집어넣었다. 경제 정책은 민주주의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그 생각이 아무리 옳아도 잘못이다. 구조조정은 이따금 경제위기를 촉발시켰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들은 도움이 더 많이 필요했다. 그때마다 더 나은 조건 즉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인 조건들이 달라붙었다. 멕시코의 경우 대학 등록금 인상, 아이티의 경우 최저임금 상한 책정, 탄자니아의 경우 민간 회사에 상수도 시설을 수주할 것 등의 조건들이었다.

 

신자유주의자들

1980년대 말에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문제가 있더라도 일시적일 뿐이라고 하였다. 변화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결국 그 가치가 드러날 거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와 정확히 똑같은 논쟁이 마르크스주의 실패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었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나 신자유주의자 모두 이상적인 경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현실 경제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양측 모두 국가를 제거함으로써 이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양측 모두 데이비드 리카도의 경제 모형 또는 그 후속 안을 현실 세계에 적용함으로써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엥겔스는 위기는 혁명을 촉발하고 그 후에 국가는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고 하였다. 마이클 브루노는 정치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올 때는 급진적 개혁안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향이 있고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정부는 서서히 사라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자들은 아무것도 늦출 수 없었다. 구 소련 국가들은 1990년대에 리카도에 기초한 이데올로기에서 다른 곳으로 직행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치료가 안되고 충격만 입었다. 몇몇 과두 집권층이 큰 산업들을 쪼개서 나눠 가졌다. 반면 그 밖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몰락했고 심지어 평균수명까지 떨어졌다. 러시아 의회가 다른 변화를 시도할 준비가 되었을 때 러시아의 민주주의 실험은 끝이 났다.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과 과두 집권층이 동맹하여 1993년 러시아 의회를 공격했다.

물론 구 소련 세계는 신자유주의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IMF는 한 나라가 파탄에 빠진 뒤에야 구제에 나섰다. 지금 IMF를 비롯한 기구들이 일을 얼마나 계속 잘못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돈의 이동

돈은 갖지 못한 자들에게서 가진 자들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 현금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누가 그들에게 세금을 부과할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은 공공서비스까지 사들여서 시장 요금을 부과했다. 일자리가 필요한 나라들과는 엄청난 거래를 벌였다. 그리하여 제3세계는 자유시장에서 팔려나갔고, 힘센 기업들이 그것을 낚아챘다. 이들을 감독할 만한 어떤 제도도 법규도 없었다. 이를 테면 노동조합, 환경보호, 작업장 안전법, 임금 및 노동시간에 대한 보호 같은 것은 염두에 없었다. 그 일을 하도급으로 주면 책임을 면하기 쉬웠다.

 

이렇게 절약된 돈은 때때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를테면 전자제품은 생산원가에 약간의 이윤을 더한 가격에 팔렸다. 하지만 이제 상품의 가치는 광고 이미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그래서 DVD 플레이어보다 운동화 한 켤레 값이 더 비싸기도 하다. 신발을 산다기보다 그 이미지를 산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상품이 싼 지 비싼지와 상관없이,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을 구입할 여유가 없었다. 제품들은 부자 나라에 팔려갔다.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무역장벽 때문에 협정이 작동하지 않을 때가 나타나자 세계무역기구가 설립되었다. 이 기구는 WTO이다. WTO는 1995년 시애틀에서 무역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열린 포럼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가장 자주 발생하는 분쟁은 토마토 크기 제약처럼 국내법을 동원해 술수를 쓰는 것이다. WTO는 이런 제약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WTO는 문을 걸어 잠그고 문 뒤에서 협상을 벌였다. 제1세계의 부자 나라들만 제 몫을 챙겼다. 이런 일을 정책 세탁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협의 절차를 거쳐 조약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정책들이 비밀리에 법안으로 변모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시애틀에 시위자들이 모여들었다. 시위자들은 세계화는 반대하지 않지만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을 반대하였다. 이들이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었다.

 

WTO 회담에 참석한 중앙은행 관계자와 기업 지도자와 정치가들은 주목받는 것을 싫어했다. 이들은 다음 회담에서 더욱 비밀스럽고 안전한 곳에서 모였다. 시위가 회담을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세계의 경제적 운명에 대해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결정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한동안 글러볼 기업 엘리트 대 전 세계의 산발적인 저항운동이 21세기의 최대 경제 이슈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 운동은 메시지가 잘못 알려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낡은 미디어에서 그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평상시처럼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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